심사위원 여러 명 앞에 선 연기자는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실제 상황과도

다르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어떻게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아야 하는가.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같은 2~3분에 불과하다면 결국은

순발력이 좋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판단이 온당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순발력이 좋으며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다고 해서 좋은 연기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충분하지 않은 시간 안에 어떻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조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어진 독백의 내용을 제한된

시간 안에 파악하여 결국은 연기 표현이 만들어지는 최적의 상황을 설정하여야 하며, 그 상황 속에 몰입하여야 하고,

주어진 텍스트 (주로 독백)의 내용을 분명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오디션에서 발표하는 텍스트는 경우에 따라서 오디션 시작 불과 한 시간 전에 제공되기도 하고 또는 수일 전에 제공되는 수도 있다. 이것은 수험생들이나 기존의 단원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는 의도에서가 아닐 것이다. 평소에 얼마나 연기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실 텍스트를 언제 주더라도 불과 2~3분 이내에 자신의 연기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기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심사는 심사이고

모두에게 제한된 조건 속에서 평가를 받는 것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도 최선은 무엇일까. 호감을 주는 인상과 옷차림, 우리말을 우리말처럼

대사를 제대로 말하는 정도가 아닐까.

연기자가 대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다. 그러나 오디션에 참가하는 연기자 대부분은 대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에 서툴러서가 아니라 긴장해서도 그럴 것이고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 대한 상황설정이 잘못되어 그 내용의 분위기나 의미가 심사위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오디션에서 주어진 독백의 내용이 아무리 생소하다 하더라도, 그리고 대사를 분석하고 작품 전체를 이해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오디션에는 주어진 내용에 담겨 있는 모든 정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관계들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내용의 의미를 자신이 이해한 만큼만 심사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의 세계 <김석만 저>연극과 인간. p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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