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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스타 분당 대본] 밑바닥에서

효쌤님 | 2015.06.28 12:46 | 조회 10



80년 세월 동안 고리키의 희곡 <밑바닥에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극장의 고정 상연 목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와 관심은 여전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리키의 드라마가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독자와 관객에게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1901년 작가는 희곡의 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이 작품은 굉장한 물건이 될 것이다.” 작품 제목의 변화를 통해서도 그러한 작가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햇빛 없는’, ‘여인숙’, ‘밑바닥’, ‘삶의 밑바닥에서’ 등. <밑바닥에서>라는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전망을 품고 있는 듯 들린다. 마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져야 할 것만 같다. <밑바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밑바닥에서>도 삶이란 있는 걸까? 도대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은 살고 있는가? 구상 단계를 지나며 희곡의 제목이 <밑바닥에서>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이 오르면 곧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죽음과도 같은 삶의 조건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러움과 굶주림과 질병과 사악함.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러한 조건들이 아니라 죽음과도 같은 삶의 조건들이 갖는 연속성과 견고함이다. 안나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린다. “하루하루가 다 신이 주신 날이니… 죽을 땐 죽더라도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좀 해줘요.” 그러자 부브노프가 사틴에게 소리친다. “들었지, 골백번도 더!” 그 소리를 들은 사틴이 받아친다. “더 이상 듣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나! 한마디 한마디를 아마 천 번은 더 들은 거 같아!”

비좁은 여인숙에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의 말만 퍼부을 뿐이고, 누가 나가고 돌아오는지에 관심도 없으며, 늘 자기의 관심사만을 혼잣말처럼 늘어놓기 일쑤다. 무대는 독백을 읊조리는 작은 벌집과도 같다. 등장인물들의 엇갈린 대화는 한 지붕 아래 모여 살고 있는 이들의 원만한 의사소통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자 장수 부브노프는 ‘썩은 실’이란 말을 반복한다. 헝클어지고 끊어져버린 실이 여인숙 거주자들을 묶어놓고 있다. 핵심을 찌르는 말에 재주가 있는 부브노프는 자신과 투숙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공통의 특징 하나를 지적한다. “다 한물간 벌거숭이만 남겨진 걸.”

작가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등장인물들의 말을 통해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갈피를 잡기 힘든 말들 속에서 당시로는 유행에서 매우 앞선, 행복에 대한 처방전이 보인다. 클레시는 노동을 통해 성공을 거두기를 원한다. 나스탸는 지어낸 사랑 속에서 구원을 찾는다. 안나의 시선은 이해할 수 없는 신에게로 향한다. 더러운 여인숙에서 나타샤는 영웅과 기적을 기다린다. 작가는 그러한 바람들을 마냥 허망하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선과 미에 대한 그들의 열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희곡에는 다른 유형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부브노프, 사틴, 남작은 사기꾼으로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어떠한 범죄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그러나 그들은 삶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고, 무의식적이기는 하나 자유와 진리에 목말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얽혀 있는 예민한 내적 혼돈의 시작은 1막 말미 루카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왜? 루카는 비범한 인물이다. 지혜롭고 경험도 풍부하며 사람들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갖고 있다. “인간의 일을 이해하고 싶어.” 그는 또한 인간의 밝은 전망과 오해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 찾겠지?… 아니면 생각해 내든가! 도와주기만 하면 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고….” 그러한 루카의 입장은 마치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노인은 (사틴이 아주 잘 파악하고 있듯이) 소극적으로 행복을 기다리고 있고 구체적인 불행에 대해서 태연하다. 그가 사틴에게 말한다.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다보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백 년이 지나고, 또 백 년이 더 지나면 아마도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거지, 결국엔!” 바로 여기에 루카의 특별한 행동 유형이 있는 것이다. 그는 어찌되었든 다양한 삶의 유형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내게는 모두 매한가지라오! 협잡꾼이라도 난 사랑한답니다… 어디든 적응하면 되지 않겠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노인은 희곡에 긴장된 내적 움직임을 부여한다. 불행한 사람들의 헛된 희망이 자라난다. 환상이 깨지기 시작할 무렵, 비극이 잉태되는 그 순간, 루카는 말도 없이 사라진다(3막 끝에).
4막에서 그간 있었던 일들의 심각한 결말이 드러난다. 사틴의 말을 빌리면, 노인은 사람들의 입맛만을 버려놓은 것이다. 이들 ‘부랑자들’의 동요가 초조함으로 인해 더욱 심해진다. 어떻게, 무엇으로 산단 말인가? 바론은 공통의 상태를 표현한다. 자신이 이전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꿈을 꾸듯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생각에 잠겨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내가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러한 의문과 무지가 모두를 다시 하나로 묶는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욕설과 험담은 이제 내적 감정의 폭발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대화의 구조도 변한다. 지난날의 파편은 사라지고 발전 라인이 새롭게 나타난다.
사틴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게 인간 속에 있고, 모든 게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만이 존재할 뿐, 나머지는 그의 손과 뇌의 일이야!” 비록 사틴에게 있어 그의 동거인들이 여전히 ‘벽돌과도 같은 바보’로 남게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자신 또한 이 말들보다 더 앞서 나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인숙에서는 처음으로 진지한 말이 고동치고 피폐한 삶으로 인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다. 부브노프의 도착은 이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사람들 어디 있어? 왜 아무도 없어?” 그는 소리치며 사람들에게 “밤새… 우리 노래나 부르자”고 제안하고, 자신의 수치스러운 운명을 슬퍼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배우의 자살 소식을 들은 사틴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아이고, 노래를 망쳤어… 그 바, 바보 놈이!” 이 반응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배우의 죽음은 진리를 움켜쥐지 못한 인간의 새로운 첫발이다. 마지막 세 장은 매 장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2막 끝에 사틴은 소리친다. “죽은 자는… 듣지 못해!” 부랑자들의 무위도식은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드라마의 움직임은 ‘살아 있는 주검들’의 각성, 그들의 귀가 열리고 정서가 살아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바로 여기에 희곡의 중요한 인간적ㆍ도덕적 의미가 존재한다. 비록 희곡은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지만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밑바닥에서 [На дне]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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