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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스타 분당] 영화 내부자들 "조상무" 조우진님의 인터뷰

효쌤님 | 2016.01.21 16:57 | 조회 8

‘내부자들’ 조우진 “여! 썰고” 화면도 썰어버린 배우(인터뷰)

[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여! 썰고, 여 하나 썰고, 거기 말고 여 썰으라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안상구(이병헌)의 팔을 자르라고 지시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라. 우악스러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건조한 표정. 살짝 권태로운 뉘앙스. 게다가 내뱉는 험악한 말과 대비되는, 말끔한 정장과 깔끔한 무테안경이 묘한 위압감과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남자는 대기업 오너 오회장(김홍파)의 심복 조상무. 찌르면 붉은 피 대신 파란 피를 내뿜을 것 같은 조상무를 연기한 남자의 이름은 바로 조우진이다. ‘앞도 있고 뒤도 있고 옆도 있는’, 그러니까 여러 빛깔을 품은 조우진은 ‘내부자들’을 통해 그렇게 걸어 들어왔다.

Q. 실물이…굉장히 선해 보인다.  
조우진: 저, 무서운 사람 아닙니다.(웃음) 

Q. 조우진, 본명인가. 
조우진: 본명은 조신제. 조우진은 2010년도부터 사용한 이름이다. 우연한 기회에 철학공부 하신 분을 만났는데,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라. “대학로에서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당신의 사주에 보충이 될 만한 이름을 지어줘도 되겠냐”고 했다. 나야 너무 감사한 일이지. 얼마 후 그 분이 이름을 몇 개 주셨는데, 그 중에 조우진이 있었다. 사실 굉장히 흔한 이름이다. 우리 동네에 ‘우진빌딩’만 세 개 있을 정도니까.(웃음) 그런데 의미가 끌렸다. 도울 ‘우’에 깊을 ‘진’. 깊게 돕는 연기자가 되라는 의미다. 

Q. 활동 이름을 바꾼 후에 운이 좀 트인 것 같나.
조우진: 우진이라고 바꾼 다음에 상업영화에 데뷔했다. 그리고 4년이 흘러 그 이름이 박힌 캐릭터 포스터가 세상에 나왔다. 하하.

Q. 그리고 ‘내부자들’을 본 대중들이 조우진이라는 배우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조우진: 놀랍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Q.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가 한 작품을 통해 이토록 주목받는 건 분명 드문 일이다. 배우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겪는 일인데, 과연 어떤 느낌일까 싶다.
조우진: 표현하기 참 어려운 일이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심정이랄까. ‘이게 무슨 일이지?’가 물음표라면 ‘와, 나에게 이런 일이!’가 느낌표다.

Q. 원래는 조상무 캐릭터로 오디션을 본 게 아니라고.
조우진: 조상무 수하 역할로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 때 몇 가지 지정 대사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조상무 대사였다. 창고 신 대사였는데, 그걸 좋게 봐 주셨는지 얼마 후 조상무 역할로 최종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Q. 조상무의 무덤덤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운이 초반 극의 분위기를 잡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캐릭터는 어떻게 잡아갔나.
조우진: 전체적인 느낌은 감독님이 많이 제공해 주셨다. 평범한 자가 악행을 벌일 때, 천편일률적인 업무를 보는 사람인 냥 악행을 행했을 때 섬뜩함이 배가 될 거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말씀에 따라 세부적인 것들을 잡아갔다. 평범한 직장인이 야근하듯 대수롭지 않게 연기하려고 했다. 

Q. 야근의 스트레스를 아주 공포스럽게 표현한 셈이네.(웃음)
조우진: 하하하. 우려했던 것보다 감독님이 내 연기를 좋아해주셨다. 현장에서 연기가 끝나면 곧장 모니터로 뛰어가서 내 모습을 확인했다. 그때 감독님 표정도 함께 살폈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았다. ‘이게 아닌데’라는 느낌이었달까.(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감독님이 웃고 계시더라. 다행이다 싶었다. 대한민국 최고 스태프들과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선배님들 틈에서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Q. 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악역이 있나.
조우진: ‘미션 임파서블3’(2006)에서 악명 높은 국제 암거래상을 연기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에서 안톤 쉬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 와, 진짜 소름끼쳤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분의 공통점이 있더라. 톤 조절을 기가 막히게 잘 한다는 것. 저런 내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싶었다.



Q. 조상무 역시 톤 조절이 굉장히 잘 된 경우다. 그랬기에 주목을 받는 거고.
조우진: 나야, 감독님이 조절을 잘 해 주신 덕이다. 하하.

Q. 촬영 때부터 이병헌 배우가 당신을 주목했다고 들었다. 지금 소속사에 당신을 눈여겨보라 귀띔한 것도 이병헌 배우라고.(조우진은 ‘내부자들’ 개봉 전 유본컴퍼니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의 첫 소속사다) 잔뼈가 굵은 배우인 만큼 웬만한 배우를 봐도 그리 큰 감흥이 없을텐데, 직접 추천까지 할 정도면 진짜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어떤 면에서 당신의 능력을 높이 산 것 같나.
조우진: 나 역시 궁금하다. 여쭤봐야 할 것 같다.(웃음) 사실 내가 기사 검색을 잘 안 한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서.(웃음) 그런데 아는 지인들이 “월드스타 이병헌이 널 인터뷰에서 언급했다”고 문자를 보내오더라. 너무 감사해서 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싶었다. 선배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는데 마침 미국에 계신다고 하더라. 그래서 감사의 문자를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다.

Q. 시작은 연극이다.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1999년에 데뷔했다.
조우진: 고향이 대구다. 1999년도에 서울에 올라왔다. IMF로 대한민국 전체가 힘든 시기였다. 어차피 대학에 큰 금액을 투자할 거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중앙무대에서 제대로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올라왔다. 원래 나이대로라면 97학번이어야 하는데 여차여차하다보니 00학번으로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다. 대학로에서 연극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입시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후, 금전적인 문제로 일찍이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제작사도 엄청 찾아다녔다. 

Q. 발품을 판 건가. 
조우진: 당시 캐스팅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정보도 얻고, 소개시켜 달라고 졸라서 영화사 가서 인사도 드리고 했다. 그땐 또 내 얼굴이 인쇄된 스티커를 비타민 음료에 붙여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돌리기도 했다.(웃음) 영화사나 광고 에이전시를 무작정 돌아다닌 거다.

Q. 그렇게 해서 콜이 오거나 인연이 닿은 곳이 있었나.
조우진: 아쉽게도…(일동 탄식) 상업영화와의 인연은 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을 통해 닿았다. 중편 ‘껍데기’라는 작품인데,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다. ‘껍데기’가 소규모지만 국제대학생평화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좋은 반응은 얻었다. 그 작품을 연출하신 심봉건 감독님이 상업영화 ‘마마’ 연출부로 들어가면서 나를 추천해 주셨다. ‘마마’가 나의 첫 상업영화다. 



Q. 처음 맛 본 상업 영화현장은 어땠나. 
조우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유명하신 분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마냥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조폭 역을 맡은 유해진 선배님 부하를 연기했는데, 선배님이 많이 챙겨주셨다. 촬영 끝나면 “스케줄 있니, 없니?” 물어보면서 여러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셨다. 너무 좋았던 게, 선배님이 가르치려하진 않았다. “넌 이렇게 해! 저렇게 해!”가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그래서 훨씬 더 교감이 됐다. ‘지금은 내가 비록 신인이지만,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후배들에게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구나.’ 생각했었다. 

Q. ‘마마’가 2011년도 작품이다. 연기를 시작한 것에 비해서 첫 상업영화 출연이 상당히 늦은 셈인데. 
조우진: 말이 연기 경력 16년이지 작품을 많이 한 건 아니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보충이 필요하면 다른 일을 잠시 하고 복귀하곤 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연기를 접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들. 그런 사이클이 몇 번 있었다. 

Q. 연기 외에 어떤 일들을 했나. 
조우진: 물류창고에서 물품 옮기고 포장하는 일, 편의점 알바, 사무보조, 고급 아파트 경비 등 굉장히 다양한 일들을 했었다. 인쇄실에 박해서 하루 종일 출력하는 일도 했고. 

Q. 봉급을 손에 쥐며 ‘일반 회사원으로 살면 어떨까’란 생각은 안 해 봤나.
조우진: 안 해 봤다. 

Q. 굉장히 확고하네. 무엇이 매번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한 건가.
조우진: 확고하다기보다는, 동경이었던 것 같다. 접시 닦다가 갑자기 “우이씨~ 연기를 해야해!” 하는 오기나 집념이 아니었다.(웃음)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동경이 나를 이끌었다.



Q. 그나저나, 혹시 박해일 닮았다는 소리 들은 적 없나? 영화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니 계속 박해일 배우가 떠오른다.(웃음)
조우진: 아이쿠, 영광이다. 그런 대배우와.(웃음) 이거 말하면 욕먹을 것 같긴한데…사실,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Q. 어쩐지. 분위기가 사뭇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심지어 ‘최종병기 활’(2011)에도 함께 출연했었네. 
조우진: 박해일 형에게 화살 맞고 죽는 역할이었다.(일동웃음). 어설픈 만주어 하는. 하하하. ‘최종병기 활’ 고사지내는 날이었다. 배우-스태프들과 고기 구워먹으면서 소주를 한 잔 하는데, 내가 앉은 테이블에 박해일 선배님이 오셨다. 마침 그 테이블에 평소 나에게 “너, 박해일과 똑같다”고 하는 분이 함께 있어서 내가 아무도 모르게 입으로 “(입 모양만)진짜 닮았어? 닮았어?” 사인을 보냈다.

Q. 뭐라고 하던가. 
조우진: “안 닮았네?”(일동웃음) 그날 이후 그 말씀은 안 하신다. 그런 이야기도 간간이 듣는다. “내가 아는 사람과 닮았다”는 이야기. 하하. 굉장히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그런 것 같다. 

Q. 메모는, 언제부터의 버릇이가? (조우진은 인터뷰 내내 흡사 수험생의 자세로 펜을 들고 수첩에 열심히 메모해가며 대화를 했다.)
조우진: 메모하는 걸 원래 좋아한다. 대단한 건 아니다. 끼적이는 수준일 뿐. 집에 가면 곳곳에 메모가 붙어 있다. 의미? 그냥 기록의 의미인 것 같다. 영감이 될 만한 것들을 가슴 속에 넣기 전에 한 번 쓰면 입력이 더 잘 되더라고.

Q. 과거에 썼던 메모를 다시 꺼내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과거의 조각들인 셈인데. 
조우진: 왜, 전날 쓴 일기를 다음 날 읽어보면 괜히 민망하지 않나. 비슷한 감정이다.(웃음) 그래서 ‘소모적인 감정을 적어 놨다’ 싶을 때는 그냥 버린다. 반면 ‘어? 이건 어떤 형식으로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영감의 원천이 되겠구나’하는 것들은 선별해서 따로 모아둔다. 



Q.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둔 메모 중에 소개해 줄 만한 게 있을까.
조우진: 김건모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노래를 보면, <어린 날 꿈꾸게 하던 그 맑은 무지개>라는 가사가 나온다. 최근 “당신은 무엇을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비로소 갖게 됐다. ‘아,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거창한 표현이지만, <어린 날 꿈꾸게 하던 그 맑은 무지개>는 영화 ‘E.T’를 보며 영화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유아기 때부터 지금의 내 인생을 통틀어 묶어 놓은 듯한 노래가사같았다. 그 노래가 라디오나, 내 핸드폰에서 랜덤으로 흘러나오면 괜히 애잔하고 아련해진다.

Q. 감성이 풍부한 것 같다. 유머감각도 감지되고. 스스로의 성격이 어떻다고 느끼나. 
조우진: 글쎄. 가까이에서 나를 봐 오신 분들은 그런다. “앞도 있고, 옆도 있고, 뒤도 있다”고. 어떨 때는 굉장히 착해 보이는데, 어떨 때는 괴팍해 보인다고한다. 어떨 때는 성격이 굉장히 우유부단해 보이는데, 어떨 때는 또 상당히 강단이 있는 것 같다고도 하고.(웃음) 

Q. ‘앞도 있고, 옆도 있고, 뒤도 있고’라. 배우하기에 최적의 조건 같다.
조우진: 하하하.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니, 괜히 민망하다.

Q. 조우진 인생의 화두는 연기인가? 
조우진: 인생의 화두라기보다, 지금의 화두를 이야기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현재 내 화두는 ‘내부자들’의 다음 작품, 다음 역할이다. 그러니까 그냥 ‘다음 작품, 다음 역할’이 아니라 ‘내.부.자.들.의.다.음.작.품.’ ‘조.상.무.의.다.음.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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